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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일기

<풍의 역사> 북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by 댄스동자 2014. 10. 12.


<능력자, 민음사, 최민석> 중에서



위는 최민석 작가의 능력자 중 작가의 말의 한 부분입니다. 밑줄 친 부분은 록'셔리 4호 중 에디터의 편지에서 인용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루하루가 지치고 고돼, 앞이란 희뿌연 안개만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 한걸음 내딛는 일조차 울렁울렁 불안함을 느낄 때 한번씩 읽으며 용기를 얻기도 하지요. 저렇게 멋진 문장을 인용한 록'셔리 4호 에디터의 편지는 인쇄 하루 전 부랴부랴 쓴 글이라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돌아간다면 글을 모두 지우고 브래드 피트 뺨치고 어퍼컷까지 날리는 제 잘생긴 얼굴로 대신해 한 페이지 가득 싣고 싶은 심정입니다. (작가님의 멋진 문장을 빌려 누추하고 송구스러운 일만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용서해주십시요.) 이미 인쇄한 거 어쩔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만, 다시 읽을 용기가 쉽게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 글을 생각할 때마다 손발이 오글오글 쑥스러워지는 기분이 드니까요. 하하하. (다시 한 번 이렇게 용서를 빕니다.)



최근 최민석 작가의 <풍의 역사> 발간 기념 북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출간이 늦어져 한 차례, 작가님의 의도치 않은 자전거 사고로 한 차례, 총 두 차례 미뤄지기도 했습니다. 평소에 뵙고 싶었던 분이라 떨리는 마음으로 행사장인 3층 모 카페로 올라갔습니다. 태어나 처음 가본 북콘서트. 이십 명 가량의 참석자 대부분 여성분들이었고 남자는 달랑 세 명 뿐이었습니다. 한 명의 남성 분은 여자친구와 붙어 앉아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다른 한 분은 어찌나 익숙하고 편안해 보이던지 정확히 카페 정가운데 명당 자리, 여성분들 사이에 쏘욱 끼어앉아 얼른 행사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자리가 어찌나 쑥스럽고 어색하던지 잘못 들어온 척하며 다시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스타벅스인 줄 알고 들어왔는데, 여기 스타벅스 아니였나요?" 사이드 한산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지만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하... 나란 남자... 이런 곳 외로운 곳이구나.' 카운터로 가 시원한 물 한 잔을 받아 들고 앉아 있으니, 군복 차림의 너댓 명과 캔모아 그네에 앉아 음료와 토스트를 먹던 기억이 겹치기 시작했습니다. 어색하지 않은 척 다리를 꼰 채 똥품을 잡으면 태연히 음료를 마셔보았습니다. 컵을 든 손이 미세히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주성철 기자와 최민석 작가님이 테이블 앞에 앉은 후 북콘서트는 시작됐습니다. 팟캐스트나 글을 통해 유쾌함을 많이 느껴 친근한 인상이 강했는데요. 역시 작가는 작가인가 봅니다. 스스로 상상했던 친근한 이미지보다는 마냥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작가의 포스가 은근 강렬히 뿜어져 나와 저를 자꾸 행사장 밖 먼 곳으로 밀쳐냈습니다. 하마터면 뉴욕까지 날아가 자유의 여신상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다시 돌아올 뻔했습니다.


준비한 시간이 끝나고 줄을 서 책에 사인을 받았습니다. "이 말이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말하고는 혼자 웃으며 싸인을 해주었습니다. 안경을 끼지 않아 뭐라고 쓰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뭔데 혼자 웃고 있지? (나도 자주 그러지만) 혼자 개그하고 혼자 웃는 타입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조금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 푸하하하 웃다가 뒤늦게 나이 많은 형님이 나타나 약속이라도 한 듯 한결같이 내뱉는 말이 있죠. "뭔데 그래? 같이 좀 웃자." 영화의 클리셰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하하. 저는 아직도 저 말을 제 입으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최대한 아끼고 있다 절체절명의 순간 숨겨온 필살기처럼 딱 세 번 정도 써 볼 생각입니다. 이야기가 또 삼천포로 빠져 산으로 가고 있네요. 행사장으로 나와 책표지를 넘겨 사인을 확인해보았습니다. '뭘 쓰면서 그렇게 웃은 걸까?' 궁금했습니다. 작가님의 절친과 닮았다는 메모였습니다. 그 친구 참 잘 생겼나 보군, 역시 좋은 작가 옆에는 좋은 친구가 있어야 한단 말이야, 라는 사실을 새삼 다시 통감하고 말았습니다. 




북콘서트를 기념해 출판사에서 준비한 선물도 있었습니다. <풍의 역사> 표지에 홀로그램으로 박힌 한문을 프린트한 티셔츠였습니다. 질문을 하는 분들께 나눠준다고 했는데요. 선물이 공개된 후 화기애애했던 행사장이 일순 정적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절대 저 선물을 받으면 안 된다는 필사의 의지가 정적의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북콘서트가 모두 끝난 후 티셔츠 필요한 사람 이야기하라고 해서 하나 달라고 했습니다. 아무쪼록 입고 다니기 부담스러운 디자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브이넥이라니! 아무쪼록 북콘서트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뵙고 싶었던 작가님을 실제로 만나 좋은 기운을 받고 돌아온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음에 작업에 꼭 입고 출연해보도록 하겠습니다.